
강병원 장로 (대인교회)
곧바로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고, 퇴원하여 목발을 짚고 출근을 해야 하는 원하지 않는 고통을 겪으며 학교 생활을 4주 넘게 하고 있었다.
그런 기간 동안 각 반 주번들은 시작종이 치기 전 2층 2학년 교무실에 달려와 수업용 가방(고재, 교무수첩, 안경, 분필 등이 들어있음)과 출석부를 챙겨서 내가 탄 휠체어를 쏜살같이 밀고 교실로 이동하였고, 교실에선 의자 대신 학생용 책상을 칠판 앞에 갖다 놓고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하지만 불편한 교사의 고통을 헤아려 진지한 태도로 수업에 임하는 성실하고 착하기만 한 학생들이 떠올라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6개 반의 수업은 이렇게 해결되지만 문제는 3개 반의 1층 수업이었다. 목발을 짚고 불안하게 계단을 내려갈 땐 등에서 진땀이 났다. 수업이 끝나고 계단을 오를 땐 각 반의 도우미들이 업고 올라갔다.
이젠 으레 계단 앞에서 등 내미는 건장한 체격의 도우미에게 업히면 나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동이’의 등에 업힌 허생원이 되었고, 허근찬의 ‘수난이대’에서 만도의 등에 업힌 ‘진수’가 되곤 했었다.
오늘의 주제는 당시 기억에 남는 ‘최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담임 추천으로 달려온 모반 최군의 등에 업혔을 때의 일이다. “이게 웬일인가?” 공중을 날아가는 듯 했었다. 공기가 다르다는 걸 몸으로 느낄 정도였다. 신장이 190cm가 넘는 최군은 힘도 좋았고, 1층 교실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최군의 별명은 곧바로 ‘비행기’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4월과 5월이 다가오면 그때가 생각이 난다. 갑작스런 사고로 장애 체험을 하면서 학교에 갈 땐 택시를 타고, 교실에 들어갈 땐 비행기(?)를 타고 갔던 기억이 새롭다.
수업이 빈 시간에 5층 도서실에 올라갈 때면 번개같이 달려와 등을 내밀며 업히기를 바라던 금호고 제자들, 당시 담임으로 있었던 2학년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곤 한다.
“더욱 더 챙겨주었어야 했는데…”, “어떻게 잘 들 지내고는 있는지.” “가끔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의 인생과 가정을 위해 마음으로나마 기도드린다.”
교사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따뜻한 체온과 끈끈한 사제 간의 정으로 선생님을 사랑하는 학생들이 있었기에 학교는 늘 가보고 싶었던 곳, 늘 그리운 곳이 되었다.
동료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급식소에 가면 으레히 밥을 담아 주시는 동료 선생님들이 계셨시기에 매주 매주 30시간이 넘는 과중한 수업과 업무들이 엄습해와도 두렵지 않았던 것 같다.










